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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노조)이 파업한다고 하면 언론들은 앞다퉈 부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냅니다. 귀족노조, 밥그릇 지키기, 과격 시위 등 단어만 봐도 긍정적인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간혹 파업 자체를 불법으로 인식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파업은 헌법에 명시한 노동 3권 중 하나입니다. 행위 자체가 불법이 아니지만, 이 또한 언론과 정부 등 여러 곳에서 세뇌하다시피 만든 이미지라고 여깁니다.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에서는 대개 노동조합 파업에 관해 시민도 우호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노동자의 행동에 여론은 물론, 시민들조차 날을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터입니다. 그중 일반 시민에게 공감을 사지 못하여 노동조합의 행동을 비판하는 게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동조합이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3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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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 명이

파업 집회를 한 것에서 유래하는 노동절

출처-<게티이미지>

 

1. 노동조합 가입률

 

우리나라 노동조합 가입률은 10% 정도입니다. 아이슬란드(83%)·핀란드(69%)·스웨덴(67%)·덴마크(67%) 등 북유럽 국가노조 가입률에 비해 턱없이 낮습니다. 영국(23.5%)·일본(17.3%)·독일(17%)·호주(14.5%)·미국(10.7%)·프랑스(7.7%) 등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한국과 비슷한 노조 가입률의 다른 국가들은 산업별 노동조합 형태를 띠고 있어서 보이는 수치에 비해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 기업별 교섭 구조이기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동권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국제노동조합 연맹에서 발표하는 세계노동권리지수입니다. 한국은 OECD 최하위권인 5등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등급에 속한 국가들은 필리핀·방글라데시·콜롬비아·이집트·짐바브웨 등이 있습니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고, 산업별 협상 등으로 보완되는 부분마저 없으니 노조 비가입자인 90%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다른 세계 이야기일 뿐입니다. 파업 관련 기사가 가장 많고 강력한 금속노조는 현대차·기아 등 생산직 노동자들이 주축입니다. 이들이 파업을 통해 쟁취한 임금인상률과 복지 등을 동종 업계의 하청업체에도 적용한다면 이들 행동을 지지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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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회방송·매일노동뉴스>

 

이렇게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은 한 이유에는 교육의 부재도 있습니다. 2009년 기준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중 노동자 권리에 관해 서술한 분량은 전체 2%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생 때 노동·노동자·노동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정규 교과수업이 아닌, 소위 운동권이었던 선생님들에게 들었던 내용이 전부였던 듯합니다. 학생 대부분이 노동자로서 사회 구성원이 될 텐데, 학교에서는 노동자라는 말도 쓰지 못합니다.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 하여 근면한 노동자 뜻을 담은 사용자 시선의 단어를 씁니다(5월 1일도 1963년부터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박정희 정부에서 노동이라는 용어가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다고 하여 근면하게 일한다는 의미의 근로로 명칭을 변경한 것입니다. 정작 이 단어를 처음 쓴 일본은 법률에 있던 근로자 단어를 노동자로 바꿨습니다). 임금이나 연월차, 정규직·비정규직 등 기본적인 노동개념도 배우지 못하는 터입니다. 

 

기본적인 노동개념이 없으니 노동조합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시선, 일방적 관점으로만 노동조합의 이미지를 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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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주노총>

 

더불어 90년대 중반 민주노총의 출범 이후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는 데 한몫했습니다. 언론은 기업의 주장만을 기사에 싣습니다. 파업이 일어나면 과격하고 폭력적인 모습만 다루는 경우가 많았지요. 사실 이런 글을 쓰는 저도 중·고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늘 말씀하시던 "폭력적이고 밥그릇 챙기는 놈들", "나라가 어려운데 지들 임금만 올려달라고 하는 이기적인 놈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을 넘는 파업은 노동조합의 잘못된 행동이 맞습니다. 그런 행동들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노동 권리가 세계 최하위인 우리나라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못한 과도기적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요? 노조 사례가 아니더라도 약자층은 과격한 모습을 띨 수 밖에 없는 게 역사적으로 많았다고 봅니다. 모든 걸 이해하자는 뜻은 아니나 생각해 볼 지점이지요. 

 

스웨덴 살트셰바덴 협약(1938년 사민당 정권과 재벌그룹 발렌베리가 체결한 노사대타협. 발렌베리는 기업지배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일자리 제공과 기술투자에 힘쓰며 최고 85%의 소득세를 내는 등 국민경제 공헌을 사민당과 약속함)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1982년 네덜란드 사용자협회와 노동총연맹이 체결한 시간제 근로자 확산을 위한 협약. 노동학계에서는 바세나르 협약을 현대 노동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한국 노사정위원회의 원조 격)

 

등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언급한 대표적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파업과 피·땀·눈물이 있었습니다. 외국을 볼 것 없이 우리나라만 해도 전태일 열사가 산화하고 나서야 노동자 권리가 조금씩 바뀐 것처럼 말이지요.

 

2. 구조적 문제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상대적으로 대기업과 고임금 직종에서 주로 결성하였습니다.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이익집단화하였습니다. 이러다 보니 현재 노조는 극히 일부 노동자들만 대변하고 있으며 대다수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하는 집단이 되어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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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길지 않은 한국의 노동조합 역사 속에서도 독점적인 권한을 유지해 주고자 어느 정도 부정부패는 넘어가 주고, 집행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비노조원 등에게 작업방해와 테러를 하는 모습은 누구라도 비판할만한 행동입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칠 때 정규직 노동조합은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기도 합니다. 2014년 현대차·기아의 하청업체 노동자 정규직 전환 합의 때도 하청업체 노동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정규직 노동조합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하기도 했었지요. 게다가 일부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간부의 자녀를 우선 취업하게 하는 규정이 있고,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 문제에 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 비해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을 첫 직장으로 선택한 젊은이가 일터를 떠날 확률이 77%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노동조합의 유무 여부가 청년 세대의 고용률이나 소득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대차·기아의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가 2차 협력 업체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처럼 노동조합이 없는 근무지가 더 열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로, 자본가를 사회적 강자로 쉽게 취급합니다. 자본가로 분류되는 기업인과 자영업자 중에서는 근로소득보다 적은 사업소득을 갖는 곳도 있기에 양분하여 무조건 노동자의 권익만 주장하는 모순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 겁니다.

 

다만 이를 오롯이 노동조합만의 문제라고 보기보단, 이러한 모순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정부, 사용자와 국민들까지 모두가 관심을 두고 노력해야 할 터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게 한국 사회의 큰 문제겠지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조짐 없이 지금 같은 모습을 지속한다면 노동조합의 긍정적 효과를 발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잃은 노동조합과 그로 인해 후퇴하는 노동환경만이 남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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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3. 정치적 활동

 

많은 분이 노동조합을 '빨갱이', '종북세력' 등으로 칭하는 데는 노동조합의 정치적 활동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민주노총에서 행했던 이석기 석방시위나 사드 배치 반대 등은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국민들조차도 노동조합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행위라고 봅니다. 물론 노동조합과 좌파 진영의 특성상 어느 정도 정치적인 연대는 필요할 것입니다. 좌파 진영이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 권리와 관련된 정책들을 펼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지지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다만 노동조합은 태생이 정치적 집단이 아니기에 소속된 개개인의 정치 성향은 모두 다를 터입니다. 정치적 연대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언급한 이석기 석방시위나 사드 배치 반대 등이 과연 노동자 권리를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에서는 비판의 대목입니다.

 

국내의 노동법은 파업의 요건을 근로조건과 관련된 사항에만 한정 짓고 있으나, 국제노동기구에서는 발표한 비준안에서는 정치적 목적의 파업에 관해서도 합법적으로 인정할 것을 두고 있기는 합니다(우리나라에서는 비준하지 않았기에 이에 관한 비난의 목소리가 노동계에서 나오고도 있습니다). 다만 위의 비준안이 정치적 파업을 불법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노동조합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파업했을 때 비판을 피하기 위한 근거로는한국 노동운동 실정(實情)을 종합해 봤을 때 시민의 시선에서는 부적합한 면모도 있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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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민주노총>

 

언급한 내용들이나 그 일부, 혹은 다른 이유로 노동조합을 비판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심지어 노동조합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고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해악이 더 큰 집단일까요?

 

4. 노동조합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

 

197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는 본격적인 노동조합 탄압이 있었습니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영국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노조 탓으로 몰았고, 파업을 진압하고 노조원을 구속했습니다. 이때를 즈음하여 노조가 단순히 임금을 협상하는 단체가 아닌,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주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이에 관련한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미국 통계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조조직률이 낮아지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중산층의 소득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노조조직률이 낮아지면서 상대적 빈곤율은 높아졌다고 하지요. 전반적으로 노동조합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 결과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조합에 가입된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노동자의 임금인상에서 효과가 있는가, 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습니다

 

국내에서 실시했던 '노동조합이 비조합원 임금에 미치는 영향: 지역 수준 분석'에서는 지역 내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증가하면 지역 내 비조합원 임금은 5% 상승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노조 천국’이라 불리는 노르웨이에서 진행한 방대한 연구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10% 늘어나면 기업 생산성도 1% 남짓 증가합니다. 여기에 단체협약이 추가되면 기업 생산성은 무려 13.5% 상승합니다. 노동조합도 중요하지만 실효성 있는 단체협상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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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결론적으로 노동조합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야박하게 평가해도, 적어도 해롭지는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노동조합을 꺼립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업에서 '비용'으로 처리하는 임금의 증가하고 노동이사제 등을 통한 경영간섭이 싫기 때문이지요.

 

노동조합은 분명 빛과 어둠 양면이 공존합니다. 미국과 독일과 노르웨이의 경제와 노동 사정이 우리나라와 같을 수 없기에 그들의 노동 사정을 단순하게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없을 터입니다. 정권에 따라, 성향에 따라 빛과 어둠 중 부각하는 방향은 다를 것이고, 우리나라 대통령의 입에서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버락 오바마)"와 같은 발언이 나오길 기대하진 않습니다.

 

다만, 보수정당 대표 입에서 “노조가 쇠파이프 안 휘둘렀으면 소득 3만불 됐을 것” 같은 갈라치기(divide and rule)를 조장하는 졸렬한 여론 선동은 적어도 나오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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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정우 선임기자/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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