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두려움, 목적, 자세에 대한 이야기
관련링크
본문
나이를 먹고 삶에 대한 여러 두려움이 너무 커져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신체적인 병이 아니라 정신의 기능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주변에 매우 많죠.
저는 그런 분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다 한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삶에 대한 소명의식이죠.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죠 죽으면 지금 생의 모든것은 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을요.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한살한살 먹어갈수록 내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헤어짐,
기르던 동물의 죽음, 나를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과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의 죽음을 포함해서 말이죠.
이런것들이 차츰차츰 삶에대한 두려움으로 남아 여러 기능문제를 일으킵니다.
저는 전자기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별 이유는 없는거 같습니다.
그냥 어떤 버튼을 누르고 조합하면 어떤 멋진 화면을 띄우기도하고
정보를 보여주는 그런 모바일 기기를 어릴적 부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기들은 대체로 비쌌고 어린나이에도 저는 그런 기기를 사면
사고싶다는 갈망에 비해 가지면 금방 흥미를 잃는다는 것을 쉽게 알아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갖고 싶은걸 못사는건 뭐랄까 너무 허무주의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한가지를 고안했습니다.
그 기기가 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기 사용의 목적을 능동적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릴적에 전자수첩은 주소록 외에도 메모를 할수 있었고 내 생각을 거기에 저장해 둘수 있다는 가치를 스스로 부여했죠.
더 커서 산 PDA에서는 지금의 스마트폰처럼 대단한 처리를 할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도 스마트폰 이기 때문에
현대에서 할수 있는 대부분의 일들을 할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할수없는 독서를 스마트폰에서 했고 영상을 즐기며 노래를 들었습니다.
비록 조악한 성능의 화면 해상도도 낮은 작은 LCD화면 이었지만 말이죠.
그냥 그 기기를 내삶에 도움을 주도록 적용하고 있다는게 즐거웠습니다.
어떤것을 사던 갖고싶단 열망으로 구매를 했지만 제가 그 기기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기기가 나와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목적이 없으면 이리저리 만져보다 길지 않은 시간에 서랍에 들어가고 흥미를 잃게 되죠.
제가 이제 무슨말을 하려는지 아실거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개개인에게 삶에 대한 소명의식을 어떻게 갖으란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왜 그게 필요한지도 얘기하지 않고요.
자신의 삶에대한 소명의식을 스스로 찾지 못하면 사회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사회에서 내가 얻을수 있는 정보란건 그저 내가 삶을 살아가려면 지겹고 힘든일을 해야할뿐이고
삶에는 언제나 위협이 존재하고 언젠가는 내가 죽는다는 사실밖에는 알수없죠.
삶에 대한 의미는 외부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때문에 삶을 살고있고 어떤 삶을 바라는지에 대한 방향성은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얻어내야 합니다.
거창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삶이란건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발견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사람의 한 챕터에 좋은 기억을 남길수 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세계관은 그 사람의 생각의 틀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죠.
자신이 약육강식의 정글이라 생각하면 삶은 그렇게 보일것이고
여행자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사실 결론은 뻔하지만 어떤 사람은 너무 유치하다, 혹은 쓸대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은 마음가짐이 삶의 방향성을 크게 바꿉니다.
자신의 세계관을 점검하고 삶이 위협으로 가득찬 정글이 아닌 우리가 여행하는 오솔길이 되도록 가꾸어보세요.